본문 바로가기

용어를 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 나토 , OTAN , 북대서양동맹)

728x90
728x90

출처-다음백과

1949년 4월 조인되었으며, 1949년 8월 24일부터 효력을 발생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그후 유럽 내에서 반공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서유럽 국가들의 기본적인 집단방위조약으로 지속되었다.

회원국은 그리스·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독일(서독, 1955~90)·룩셈부르크·미국·벨기에·스페인·아이슬란드·영국·이탈리아·체크·캐나다·터키·포르투갈·폴란드·프랑스·헝가리 등이다.

1952년 2월 가입한 그리스와 터키, 1955년 5월 가입한 서독, 1982년 5월 가입한 스페인, 1999년 3월 가입한 체크·폴란드·헝가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래의 조인국들이다. 프랑스는 NATO의 회원국으로는 계속 남아 있었으나, 1966년 NATO 통합군에서 탈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 서유럽은 경제적으로 황폐해 있었으며, 약화된 국민적 사기와 국내 정치의 취약성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또한 종전과 함께 영국·미국·프랑스 등의 연합국들은 군사력을 급격히 그리고 철저하게 감소시킴으로써 군사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이 강력한 공산당들이 대두되었다.

반대로 소련은 전쟁을 계기로 중·동유럽의 모든 국가를 군사적으로 점령함으로써 강국으로 부상했다. 1946~48년 모스크바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면서, 모든 비공산주의적 정치 활동을 억압했다.

동유럽 전체에 '철의 장막'이 형성되었으며, 동유럽에 주둔한 대규모의 소련군은 서유럽에 길고 불안정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편 서유럽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시협조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양측은 독일 점령지역에 각각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구축했으며 사실상 독일은 동·서 국가로 양분되었다.

1948년 미국은 마셜 플랜을 수립했으며, 이 계획은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제 복구를 촉진시키기 위해 공동계획을 세운다는 조건으로 유럽에 대량의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군사적 측면의 복구를 위해서는 1948년 3월 브뤼셀 조약에 따라 영국·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가 집단방위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브뤼셀 조약 체결국들이 미국의 원조 및 지원 없이 소련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1개월이 채 못 되어 브뤼셀 조약 체결국들은 미국·캐나다 등과의 협상을 시작하여 집단방위체제를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1949년 NATO의 창립 회원국들은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을 체결했다.

북대서양조약과 NATO 동맹의 중심이 되는 조항은 제5조로서, "조약국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 행위로 간주하며, 조약국 중 한 국가가 그러한 무력공격을 당했을 때에는 국제연합(UN) 헌장 제51조에서 인정한 개인 또는 집단의 자위권(自衛權) 발동에 따라 나머지 조약국들은 북대서양 지역의 안보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무장군의 사용을 포함한 모든 행동을 개별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협의하여 즉각 활용함으로써 공격당한 국가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제6조는 "유럽 및 북아메리카 지역의 조인 당사국들에 대한 무력 공격"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조약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을 정의하고 있다.

제3조에 따라 미국이 이행한 군사방위원조(동맹 창설 후 처음 20년간 25억 달러 이상의 원조가 이루어짐)는 유럽 NATO 회원국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제9조에 따라 동맹의 중앙집권적 행정·지도 체계가 수립되었으며, 광범위한 민간단체, 군사적 지휘체계, 군사고문단, 군사활동 등이 개발되었다.

그밖에 다른 조항들은 회원국이 민주제도를 발전시키고 집단군사능력을 배양하며, 회원국끼리 긴밀히 협력하고, 유럽 내 비회원국의 참여에 개방적 자세를 보일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바르샤바 조약 동맹의 폐기(1991)로 체크·폴란드·헝가리 등 몇몇 동유럽 국가들은 NATO 가입을 꾀했다. NATO 회원국 대부분은 이에 찬성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러시아의 안마당을 넘보는 NATO의 팽창정책으로 규정해 강력히 반대했다.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히자 NATO 내부에서도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은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민주주의 제도 도입을 방해하고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동유럽 국가의 NATO 가입에 반대했다.

이런 내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 3국은 1999년 3월 마침내 NATO에 가입했으며, 이로써 NATO 회원국은 19개국으로 늘었다.

3국 외에도 알바니아·불가리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을 희망했다.

21세기 들어 러시아와 NATO는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728x90
728x90